본문 바로가기
Movie talk

말모이 : 말을 지켜야 나라를 지킨다

by Routineispower 2023. 3. 6.
반응형

조선어학회 회원

1. 말모이의 역사를 훑어보다

  우리말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말을 지켜내는 건 곧 나라를 지키고 나를 지키고 우리의 가족을 지키는 일입니다. 1933년 만주, 주시경 선생님의 말모이 작업이 담긴 원고가 발견되면서 중단됐던 조선어 말모이 작업이 다시 시작됩니다. 극장에서 일하던 김판수는 도둑질을 일삼던 춘삼에 의해 전과자였던 과거가 들통마녀서 극장에서 쫓겨납니다. 아들의 월사금까지 내야 하는 빠듯한 경제 상황에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돈이 필요해 절도를 하게 됩니다. 황해도 사투리가 적힌 종이가 있는 가방을 훔쳤으나, 다시 돌려주게 됩니다. 그런 인연으로 조선어학회에서 심부름을 맡아 일하게 됩니다. 조선어학회에서 일하던 판수는 문맹이었고, 일을 하면서 한글을 배우게 됩니다. 한글을 배워 '운수 좋은 날' 소설을 읽으며 감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전국 각지의 사투리를 모으는 일은 쉽게 끝나지 않고 지지부진하였습니다. 판수는 아들의 월사금이나 벌 목적으로 일하게 됐지만, 조선어학회 일은 점점 믿음이 생기면서 사투리를 모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감방에 있던 동기들을 데려와 사투리를 모으는 일에 공헌을 합니다. 일이 쉽게 해결되는 듯하였으나, 일본 순사가 들이닥쳐 말모이 문서를 모두 가져가 버린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잡아가 고문을 하면서 더 이상 조선어학회의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죽어버린 조갑윤은 조선어학회의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조선어학회 자료를 모두 필사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 자료를 받아, 다시 조선어학회는 활동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판수의 업무 장소였던 극장에서 공청회란 이름으로 다시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각 지방의 사투리를 모아 사전의 원고가 마무리될 무렵 다시 일본 순사들에게 쫓기게 되고, 목숨을 바쳐서 판수는 원고를 살려냅니다. 

 

2. 목숨을 건 우리말

  일제강점기는 민족 말살 통치기였습니다. 일본이 무단통치, 문화통치 조선을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일본인에 동화시켜 중일, 태평양 전쟁에 무기로 쓸려했던 민족 말살 정책이었습니다. 일본어 교육을 시켰고, 신민화 정책을 펼쳐서 우리말뿐만 아니라, 조선을 정신적으로 굴복시키고자 주민들에게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주입시키면서 세뇌시켰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조선을 동일하다는 일선동조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게 하여,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신사참배도 이루어졌다. 강제 개명을 시켜 창씨개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남면북양정책, 국가총동원법을 통해 전쟁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한국을 통해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은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고 야만 그 자체였습니다.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일은 일본의 정책에 저항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말이었습니다. 우리말을 지켜 우리의 얼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어떻습니까. 역사를 올바로 바로 잡아야 할 사람들이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지금까지도 일본에 의해 고통받는 국민들이 있는데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일본과 풀어야 할 일들을 그냥 얼렁뚱땅 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훗날 후손들에게 무슨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우리의 국민들에게 상처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약소국이라 늘 주변 강국들에게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고통받는 건 국민들입니다. 다시 어리석은 짓으로 주변국들에게 휘둘려서 가족들을 아프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가 강해지는 것은 국민의 살과 뼈를 발라서 살찌워서 안 됩니다. 

말모이를 위한 자료

3. 학회의 역사

  학회의 시작은 주시경 선생님과 여러 사람이 국어연구학회가 시작됐다고 보고, 1908년 8월 31일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1921년 12월 3일 조선연구회로 다시 시작됐고, 장지영, 김윤경,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이병기 등의 회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이윤재, 한징은 옥사하면서 광복 후 조직을 재건하여 조선말 큰사전 사업이 다시 시작됩니다. 그 후로 계속 발전되면서 우리말 큰사전 이름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